[아프리카 위클리 특별칼럼] 아프리카에서 누가 한국을 매력적으로 보는가? (김수원/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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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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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분이 좀 울적할 때 ‘응답하라 1988’을 찾아본다. 그 드라마의 세세한 정서를 공유하기엔 나는 그때 초등학생이어서 좀 어렸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노래들은 여지없이 내 기분을 띄워준다. 어릴 적에 들었던 노래는 평생 좋다.

2년 전 현지조사 중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Cape Town)에서 가장 청취율이 높은 라디오 방송의 DJ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라디오는 남아공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전역에서 아직 가장 파급력이 높은 매체다. 특히 사람들이 출근하고 등교하면서 차안에서 라디오를 듣는 아침 시간은 ‘프라임 타임’이다. 과거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대통령을 수행하기도 했던 인기 라디오 DJ 아덴 토마스(Aden Thomas)는 인터뷰 당시 Heart FM의 아침방송을 수년간 진행하고 있었다. 내가 K-pop의 인기가 미디어 종사자들에게도 느껴지냐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느껴지냐고요? 폭발적입니다. 싸이가 처음 나올 때 우리 방송사 직원들끼리 모여서 회의를 했어요. "야…… 도대체 이 노래를 뭐라고 분류해 놔야 되나? 세계음악? 댄스 음악? 근데 이거 진짜 음악은 맞어? 그냥 쇼 아니야? 이걸 틀어야 돼, 말아야 돼? 대체 이게 뭐야? (What the hell is it?)"


ⓒ 페이스북 이미지를 바탕으로 저자 각색

 

그의 아침 방송은 당시 재미난 프로그램을 진행중이었는데, 차를 타고 등교하고 있는 초등학생이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서 학생이 다니는 학교와 반을 이야기하면 방송국에서 그 반 학생 모두에게 간식을 선물해주고 신청곡을 틀어주는 형식이었다. 수년 전 싸이가 남아공 방송사 직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었지만, 지금은 이 코너에 전화를 거는 초등학생 신청곡의 대부분이 K-pop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진행자 아덴 토마스는 이렇게 말했다.

“남아공에서 K-pop은 초등학생들의 ‘스윗 스팟(Sweet spot)’입니다.”


이 남아공의 아이들은 나중에 나처럼 크고 나서, 상큼한 기분전환이 필요한 어느 날, 어릴 적 라디오에 신청한 K-pop노래를 찾아 듣지 않을까? 한국과 아프리카의 교류의 짧은 교류사를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초등학생 이외에 또 누가 한국을 매력적으로 생각할까?


아프리카 사람들이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큰 나라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한 연구는 종종 진행되었다. 중국은 아프리카의 인프라 개발을 위한 재정적 지원의 측면에서 선두를 달린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재정 지원은 장기 아프리카의 광물자원을 담보로 한 차관 형태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서구에서는 이러한 아프리카의 외교 및 투자행태는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고안된 ‘빚의 외교(Debt diplomacy)’라고 비판해왔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영향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여겨진다. 중국과 아프리카의 교류 역사는 길지만, 본격적으로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소프트 파워를 키우기 위한 노력은 2000년 중국아프리카협력포럼(Forum on China Africa Cooperation: FOCAC)의 창립과 함께 시작했다. 이후 중국은 아디스아바바에 2억 달러를 들여 아프리카연합 본부를 지어주었고,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나라에 도로와 철길을 깔고 있다. 2021년 아프로바로미터(Afrobarometer)의 조사에 의하면 아프리카인의 거의 3분의 2(63%)는 중국이 자국에 미치는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이 "다소 긍정적" 또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더 많은 아프리카 사람이 중국보다는 미국을 바라본다. 미국은 여전히 아프리카의 최대 원조 공여국이다. 같은 조사에 의하면, 아직도 더 많은 아프리카 국가의 사람들이 미국의 국가발전 모델을 중국식 모델보다 더 선호한다. 100명 중 3명이 중국어를 배우기를 선택한 반면, 10명 중 7명은 국제어로 영어를 배우기를 선택하고, 젊은 사람들은 나이든 사람들 보다 더욱 중국보다는 미국에 대한 선호도가 강하다.


그렇다면 누가 아프리카에서 한국을 매력적으로 여길까? 아프리카 사람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한 대규모 연구는 아직 없다. 이런 연구를 실행하는 것은 큰 비용이 소요된다. 대신 소규모 연구를 진행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체적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는 있다. 나는 2015년 가나의 수도 아크라(Accra)에 문을 연 한 미국 대학교의 아프리카 캠퍼스에서 국제관계학 강의를 시작하면서 우연히 한국 드라마를 보는 가나 시청자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가나, 케냐, 남아공에서 한국 미디어 소비의 특이성과 아프리카 미디어 소비자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수년간의 연구결과는 아프리카에서 한국 대중문화를 즐기면서 한국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문화소비자 집단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처음에 K-pop과 한국 드라마가 아프리카에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2000년대 초 한국 드라마는 ‘상류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다. 한국 정부는 공공외교 차원에서 일년에 한두편의 한국드라마 저작권을 구매하여 아프리카를 비롯한 저소득 국가 방송국을 통해 무상으로 공급하는 전략을 취했는데*,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한국 대중문화와의 ‘첫대면’이 이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그 중에서도 특수한 사회경제적 계층이 처음 텔레비전으로 만난 한국 드라마를 디지털 플랫폼에서 적극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들은 교육수준이 높고, 도시에 거주하며, 다른 해외문화 소비 경험이 축적되어 있으며, 경제적으로 소비력이 높은 계층이었다. 아직도 아프리카 대륙의 30%만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상황에서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도시를 중심으로 인터넷망을 연결하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데이터는 다른 대륙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비싸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 식민언어(영어)로 자막이 제공되던 한국의 드라마를 즐기는 소비자 집단은 주로 대학생이 집에 있는, 소위 말해 먹고 살만한 집의 사람들이었다.

*이 전략은 현재 중국국립영화사를 중심으로 중국정부가 그대로 답습하여 아프리카에서 진행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는 재미있고, ‘자녀와 함께 보아도 민망하지 않은’ 영상물로 여겨졌고, 한국 사람들은 ‘음식을 갖고 장난을 치지 않는’ 예의 바른 사람들로 상상되었으며, 한국은 ‘가난한 사람도 고급 휴대폰을 사용하고 고기를 먹는’, 역사가 깊은 나라로 상상되었다. 한국 영상물과 한국 그리고 한국인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는 중국의 아프리카 미디어 개입 그리고 아프리카에 범람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텔레노벨라(Telenovela)에 관한 부정적 이미지에 반해 매우 긍정적이다. 예를 들어, 잠비아에서 중국은 잠비아 방송 디지털전환 과정을 지원하였다. 그런데 광대역으로 넓히는 과정에서 생겨난 추가 채널에 중국 CCTV를 여러 채널 삽입하였고, 이는 "티비를 틀면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말이 나온다"는 잠비아 시청자들의 불만으로 이어졌으며 반중정서가 심화되어 잠비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결국 잠비아 정부는 인권침해 등을 이유로 이 프로젝트를 맡은 중국회사의 대표를 추방했다). 또한 가나의 미디어 제작자들은 방송국에서 싼 값으로 구입해 일년 내내 방영하는 텔레노벨라가 선정적 내용과 이미지로 아프리카의 정서를 혼탁하게 만들고 아프리카 자체의 문화제작역량을 저해한다고 비난한다.


이런 문화소비자층을 중심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에는 미디어에 노출된 이미지에 기반한 상상 속의 한국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남아공의 청년들은 한국 영상물을 재미있게 본 경험에서 더 나아가 한국의 근대사에 대해 궁금해하고 인터넷을 통해 검색한다. 그리고 한국도 아프리카의 국가들처럼 식민경험을 겪었으며, 수탈을 당했고, 냉전시절 강대국의 갈등관계를 대신하여 한국전쟁을 겪고, 이후 어두운 독재정권하에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서 우리와 자신의 슬픔을 같은 선상에서 공유한다. 더불어 한국이 탄압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제 경제성장 뿐 아니라 민주주의, 그리고 근사한 문화산업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한국이 아프리카를 포함한 과거 식민시절을 겪었던 역사적 집단을 대표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한국을 자랑스러워 한다.

 


사진 (왼쪽): 이한열은 고문살인은폐 규탄시위(1987)에서 최루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MBC

사진 (오른쪽): 헥터 피에테르손(Hector Pieterson)은 아프리칸스어(Afrikaans)을 강요하는 교육정책 변화에 반대하는 소웨토(Soweto) 시위(1976)에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SAHO

 

곧 한·아프리카 정상회의가 열린다. 아프리카를 상대로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와 같은 일대다자형식의 외교를 시작한 것은 일본이다. 일본은 1993년 도쿄아프리카개발국제회의(Tokyo International Conference on African Development: TICAD)를 시작으로 꾸준히 아프리카와 일본에서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TICAD는 우리의 아프리카 외교, 특히 이번 한-아프리카 정상외교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TICAD는 시간이 흐를수록 일본 아프리카 정책의 단단한 중심축의 역할을 하고 있다. TICAD라는 지속성 있는 플랫폼을 통해 일본 외교는 아프리카 외교의 방향을 공유하고 지속한다. 통일된 큰 틀에서 그러나 다양한 분야에서 아프리카와 일본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그 다양한 약속이 진행되고 검증되고, 새로운 단계로 발전한다. 일대 다의 산만한 약속이 아니라, 다양한 부처의 분절화된 약속이 아니라, 하나의 수렴된 플랫폼에서 공통의 목표로 아프리카 외교 정책이 진행된다. 또한 그 연속성은 아프리카 외교를 선거가 지나면 바뀌는 외교방향 혹은 정치가 아니라 지속적인 외교의 정당성으로 구현한다.

매력은 소프트파워(Soft Power)의 동의어이다. 아름답고 인기있는 문화상품은 그 문화상품을 배출한 국가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국제정치적으로 말하자면, 문화는 소프트파워의 원천이다. 그러나 문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소프트파워의 개념을 처음 소개한 조세프 나이(Joseph Nye)는 정치적 가치, 외교의 정당성을 문화와 함께 세개의 중요한 소프트파워의 원천으로 설명한다. 문화 한국은 매력적이다. 아프리카에서 한국의 문화를 통해 한국을 알고 매력적으로 느끼게 된 적극적 문화소비자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미래의 오피니언리더가 될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다. 이들은 지금 미디어에 나오는 이미지로 한국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공부하고 우리에게 같은 식민경험을 겪은 동료로서 연대감마저 느끼고 있다. 이들에게 한국은 정치적 가치와 외교의 정당성의 측면에서 한국은 아프리카에서 여전히 매력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