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위클리 특별칼럼] 아프리카 토착어 사용의 좋은 예, 스와힐리어(박정경/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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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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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외국인이 과거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아서 한국에서는 일본어가 쓰일 것이라 말한다면, 그 말을 들은 한국 사람은 기분 나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식민지 시대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 저항한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한국어에 남은 일본어의 잔재를 지우고 싶어 한다. 한국어는 한국인 정체성의 근간이며, 세계 무대에서 한민족의 긍지를 내세우는 수단이다. 반면, 아프리카에서 식민종주국의 언어가 독립 이후에도 사용되는 상황에 대한 아프리카 사람들의 거부감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 식민종주국의 언어가 여러 아프리카 국가의 공식어로 쓰이고 있으니, 어찌 보면 식민주의의 가장 큰 잔재가 방치되고 있다.
2023년 7월 7일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 스와힐리어 날' 행사 포스터
아프리카 대륙의 대다수 국가는 다언어 사회다. 구(舊) 식민종주국 언어인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등이 행정, 교육, 언론과 같은 공적인 영역에서 많이 사용되지만, 가정, 거리, 시장 등 사적인 영역에서는 아프리카 토착어가 주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은 식민종주국의 언어를 교육 과정을 통해 습득하지만,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접해온 아프리카 토착어를 더 편하게 여기는 것이다. 다종족 사회인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한 나라의 국민이 서로 다른 모어(mother tongue)를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나이지리아 한 나라에만도 250여 개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19세기 말엽 유럽 제국들의 식민지 분할로 현재 아프리카 국가의 경계가 정해졌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역사, 문화, 언어 등이 고려되지 않고, 유럽 제국들의 이익에 기반을 두고 정해진 식민지 경계를 토대로 아프리카의 신생독립국이 형성되었다. 서로 말이 다르고, 역사, 문화, 종교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한 나라의 국민이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어느 한 집단의 모어를 국민의 통합을 위한 국어(national language)로 내세울 수 없다. 다른 언어를 쓰는 집단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수 없이 식민종주국의 언어가 아프리카 국가의 공적인 영역에서 널리 쓰이게 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영어나 프랑스어 같은 식민종주국 언어가 아프리카 국가에서 공식어로 사용되는 현실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문명화’라는 미명 하에 아프리카 식민통치가 자행되었다. 식민주의자들은 아프리카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미개하고 야만적인 원시 아프리카 사회의 열등한 족속들을 근대화된 유럽 국가의 식민지배를 통해 문명의 빛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 토착어는 야만인의 지껄임 정도로 비하되고, 식민종주국의 언어는 문명, 발전, 지식의 언어로 격상되어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교육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식민지 시대의 논리가 독립 이후 아프리카 사회에도 만연해 있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 식민종주국 언어 구사 능력이 필수요건처럼 되어 버렸고, 학교, 직장, 관청 등의 공적인 의사소통에서 아프리카 토착어로 말하는 것은 부적절한 행위처럼 여겨진다.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자기 정체성의 핵심이자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는 아프리카 토착어를 수치스러워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아프리카 국가에서 식민종주국 언어 사용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영어권 아프리카,’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등의 용어가 일반적으로 쓰이지만, 실상 아프리카 국가에서 식민종주국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계층은 고등교육을 받은 소수다. 대개 아프리카의 일반대중들은 식민종주국 언어로 기본적인 의사소통 정도 할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아프리카 토착어를 주로 쓴다. 그런데 아프리카 국가에서 식민종주국 언어는 권력의 언어다. 영어나 프랑스어를 잘해야만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사회 각 분야의 주역으로 행세할 수 있다. 이 권력의 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대다수 일반대중은 주변화될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의 진정한 탈식민화는 바로 이 언어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는 요원하다. 아프리카 토착어의 언어 지위가 격하되고, 식민종주국 언어가 권력의 언어인 현실이 지속된다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정신적 식민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이 식민주의자들이 의도적으로 주입한 열등감을 극복하고 다시금 인간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토착어 사용의 진흥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프리카 국가에서 영어나 프랑스어는 외국어이어야 하고, 국어로 지정된 아프리카 토착어가 행정, 교육, 외교, 사법의 공식어가 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다종족·다언어 사회인 아프리카에서 교통어로 자리매김한 토착어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교통어’(lingua franca)란 서로 다른 모어를 보유한 집단 간 소통을 위해 오래전부터 광범위한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어 온 언어를 가리킨다. 동부 아프리카의 스와힐리어(Swahili), 서부 아프리카의 하우사어(Hausa), 남부 아프리카의 줄루어(isiZulu) 등이 대표적인 아프리카의 교통어다. 특히, 스와힐리어는 식민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면서 대륙 전체를 통합으로 이끌 언어로 주목받고 있다. 아프리카 토착어인 스와힐리어가 식민종주국 언어 사용의 사회적 부작용을 해결할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다.
스와힐리어 사용 지역이 아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2020년부터 스와힐리어를 제2외국어 선택 과목으로 교육하고 있다. 남아공의 공교육 시스템에서 스와힐리어가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와 함께 주요 제2외국어로 지정된 것이다. 당시 기초교육부 장관(Minister of Basic Education) 엔지 모쳉가(Angie Motshekga)는 스와힐리어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영어, 아랍어 다음으로 널리 쓰이며, “아프리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힘을 지닌 언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프리카 토착어 중 유일한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의 공식어인 스와힐리어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언어이자 아프리카 사람들 간 통합을 도모하는 언어로 여겨지고 있다. UNESCO에서는 매년 7월7일을 ‘스와힐리어의 날’로 지정하여 아프리카 토착어 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아프리카 대륙 중·동부의 10여 개국에서 스와힐리어가 사용되고 있다. 독립 초기부터 스와힐리어를 장려하는 언어정책을 펼친 탄자니아는 이 언어가 가장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 국가다. 탄자니아의 국어이자 공식어인 스와힐리어는 이 국가의 국민 통합에 크게 이바지했다. 국민의 다수가 스와힐리어를 사용하고 있는 케냐에서는 독립 초기에 이 언어가 국어로 지정되었고, 2010년의 헌법 개정 시 스와힐리어에 공식어의 지위가 부여되었다. 탄자니아가 독립 이후부터 스와힐리어를 국어이자 공식어로 지정하여 공적인 영역에서도 활발하게 사용해 왔던 것과는 달리, 케냐에서는 스와힐리어 사용이 그다지 활성화되지 못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케냐와 탄자니아의 스와힐리어 사용 현황이 차이를 보이는 것은 독립 초기부터 두 나라의 국가 개발 이데올로기가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이 1960년대 초에 유럽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났고, 독립 운동을 주도한 정치 지도자들이 아프리카 신생독립국의 새로운 집권 세력으로 등장했다. 이 정치 지도자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신생독립국의 국가 개발의 노선이 결정되었다. 스와힐리어 사용 지역인 동아프리카에서 케냐는 친서방 자본주의 노선을 선택했다. 경제적으로 시장경제에 기초한 산업화를 지향하면서 서유럽·북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외교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이와 달리, 탄자니아는 비동맹주의 및 제3세계의 단결을 표방하며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했다. 특히, 1967년에 발표된 ‘아루샤선언’(Arusha Declaration)을 통해 탄자니아는 전 세계에 아프리카식 사회주의를 천명하며,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자급자족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 개발을 꾀했다. 언어 정책에 있어서도 탄자니아는 스와힐리어를 국민문화 창달의 핵심 요소로 여기고, 이 언어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이러한 스와힐리어 우선 정책의 결과로, 탄자니아에서는 아프리카 토착어인 스와힐리어가 명실상부한 국어이자 공식어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독립 초기 케냐 언어정책의 초점은 스와힐리어에 맞춰져 있지 않았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케냐는 아프리카 토착어 사용을 강조하지 않았고, 식민지 시대에 유입된 영어를 공식어로 지정했다. 케냐에서 스와힐리어 사용이 획기적으로 확대된 계기는 1985년 8-4-4 교육 체계의 실시였다. 케냐 교육부는 초등학교 8년, 중등학교 4년, 대학교 4년으로 교육 기간을 재편하면서, 전국 공통의 초등 및 중등 졸업인증 시험을 도입했다. 새로운 교육 체계에서 스와힐리어가 졸업인증 시험에 출제되는 필수 교과목이 되면서, 케냐의 모든 초등 및 중등 학생은 스와힐리어를 공부해야만 했다. 교육 과정에서 스와힐리어를 필수 시험 과목으로 지정한 조치는 이 언어의 사용 확대에 이바지했다. 이로 인해 케냐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스와힐리어의 지위는 한층 개선되었다.
우간다에서도 스와힐리어 화자가 다수 존재하고 일부 학교에서 이 언어가 교육되지만, 탄자니아나 케냐에서와 같이 스와힐리어가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사용되지는 않는다. 최근 우간다 정부는 스와힐리어 사용을 장려하는 언어정책을 강조하고 있는데, 2005년 헌법 개정 시 스와힐리어를 영어에 이어 두 번째 공식어로 지정하였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스와힐리어가 카탕가(Katanga)주를 중심으로 동부 지역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으며, 콩고어(Kongo), 루바어(Luba), 응갈라어(Ngala)와 더불어 4대 국어 중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아프리카대호수지역(African Great Lakes Region)의 르완다와 부룬디에도 스와힐리어 화자가 많이 있으며, 케냐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남수단,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의 남부 지역과 탄자니아 인근 잠비아, 말라위, 모잠비크 등의 북부 지역에서도 스와힐리어가 사용된다. 이밖에 과거 동아프리카 인도양 해상 무역의 거점이었던 코모로제도 및 마다가스카르 북서부와 아라비아반도의 오만에도 스와힐리어 화자가 존재한다.
스와힐리어는 현재 중·동부 아프리카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쓰이는 교통어지만, 19세기 초반까지 이 언어는 동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형성된 스와힐리 도시국가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언어였다. 스와힐리 도시국가는 과거 융성했던 인도양 해상무역을 통해 형성되었다. 10세기부터 13세기경, 소말리아부터 모잠비크까지 이어지는 동아프리카 해안과 도서 지역의 무역거점을 중심으로 30여 도시국가가 들어섰는데, 이 도시국가에서 기존의 반투계 아프리카인들과 아랍 및 페르시아계 이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독특한 해안 사회를 구성했다. 이처럼 해안 지역에서만 쓰이던 스와힐리어가 지난 이백여 년 사이에 동아프리카 사회에서 일어난 역사적 변화로 인해, 광범위한 내륙 지역까지 그 사용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스와힐리어 내륙 전파의 첫 번째 계기는 동아프리카 내륙 교역의 급격한 성장이다. 동아프리카 내륙 교역은 18세기 이전에도 행해졌지만, 유럽과 북미의 국가들이 잔지바르(Zanzibar)와 공식 교역 관계를 수립한 1840년대에 동아프리카의 무역 규모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증했다. 당시 상아 채취와 노예 포획을 위해 대상(隊商, caravan)이 조직되고, 이들의 내륙 원정이 이어졌다. 이 대상을 이끄는 사람들은 해안 출신의 스와힐리어 화자였는데, 이들이 내륙의 주민들과 접촉하면서 스와힐리어가 내륙으로 전파되었다. 내륙 무역이 활발하던 시기에 스와힐리어는 남쪽으로는 잠비아, 서쪽으로는 콩고민주공화국까지 전해졌다. 또한, 대상이 왕래하는 경로 상의 무역거점, 예를 들면 탄자니아 서부의 타보라(Tabora)와 우지지(Ujiji), 부룬디의 부줌부라(Bujumbura) 등지에는 내륙 교역 기지가 건설되기도 했다. 이러한 무역거점에는 서로 모어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었는데, 이들 사이에 의사소통 수단으로 스와힐리어가 사용되었다.
유럽 제국들의 동아프리카 식민통치 역시 스와힐리어가 동아프리카 내륙에 전파되는 것을 촉진시켰다. 19세기 말엽부터 독일은 탄자니아의 내륙인 탕가니카(Tanganyika)에서, 영국은 잔지바르와 케냐에서 식민지를 운영했다. 독일과 영국은 효율적인 식민행정을 위해 스와힐리어 사용을 장려했다. 특히, 독일 식민행정부는 스와힐리어를 중요한 식민통치 수단으로 인식하고, 탕가니카 전역에 스와힐리어 사용이 확대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독일 식민행정부는 군인, 교사, 경찰관, 통역관, 하급관리 등 식민통치를 위한 현지 인력을 고용할 때, 스와힐리어 화자를 선호했다. 따라서 독일 식민지 시대에 주민과 관청 사이의 의사소통은 주로 스와힐리어를 매개로 이루어졌으며, 이전까지 교역의 언어였던 스와힐리어에 행정 및 교육의 언어라는 새로운 지위가 부여되기도 했다.
동아프리카에서 신생독립국의 출현도 스와힐리어 사용 확대에 기여했다. 특히, 탄자니아의 정치 지도자들은 스와힐리어를 새로이 건설된 탄자니아의 정체성과 국민문화 확립에 필수적인 요소로 여겼다. 독립 초기부터 국립대학에 스와힐리어 관련 학과와 연구소가 설립되었고, ‘스와힐리어진흥협회’(Jumuiya ya Kustawisha Kiswahili) 같은 국책 기관이 스와힐리어 발전을 주도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자신들 고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강제로 주입된, 자신들 삶의 방식과 예술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 아프리카 문화를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가치 있는 자산으로 재발견할 때만이 아프리카인의 정신적 독립은 성취될 수 있다. 그 첫걸음은 아프리카 토착어 사용의 진흥이다. 아프리카 토착어에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가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현대 아프리카 국가의 각 분야에서 토착어 사용이 활성화되어야 세계만방에서 아프리카 문화의 가치가 정립될 수 있다.
2023년 7월 7일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 스와힐리어 날' 행사 포스터
아프리카 대륙의 대다수 국가는 다언어 사회다. 구(舊) 식민종주국 언어인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등이 행정, 교육, 언론과 같은 공적인 영역에서 많이 사용되지만, 가정, 거리, 시장 등 사적인 영역에서는 아프리카 토착어가 주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은 식민종주국의 언어를 교육 과정을 통해 습득하지만,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접해온 아프리카 토착어를 더 편하게 여기는 것이다. 다종족 사회인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한 나라의 국민이 서로 다른 모어(mother tongue)를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나이지리아 한 나라에만도 250여 개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19세기 말엽 유럽 제국들의 식민지 분할로 현재 아프리카 국가의 경계가 정해졌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역사, 문화, 언어 등이 고려되지 않고, 유럽 제국들의 이익에 기반을 두고 정해진 식민지 경계를 토대로 아프리카의 신생독립국이 형성되었다. 서로 말이 다르고, 역사, 문화, 종교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한 나라의 국민이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어느 한 집단의 모어를 국민의 통합을 위한 국어(national language)로 내세울 수 없다. 다른 언어를 쓰는 집단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수 없이 식민종주국의 언어가 아프리카 국가의 공적인 영역에서 널리 쓰이게 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영어나 프랑스어 같은 식민종주국 언어가 아프리카 국가에서 공식어로 사용되는 현실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문명화’라는 미명 하에 아프리카 식민통치가 자행되었다. 식민주의자들은 아프리카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미개하고 야만적인 원시 아프리카 사회의 열등한 족속들을 근대화된 유럽 국가의 식민지배를 통해 문명의 빛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 토착어는 야만인의 지껄임 정도로 비하되고, 식민종주국의 언어는 문명, 발전, 지식의 언어로 격상되어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교육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식민지 시대의 논리가 독립 이후 아프리카 사회에도 만연해 있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 식민종주국 언어 구사 능력이 필수요건처럼 되어 버렸고, 학교, 직장, 관청 등의 공적인 의사소통에서 아프리카 토착어로 말하는 것은 부적절한 행위처럼 여겨진다.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자기 정체성의 핵심이자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는 아프리카 토착어를 수치스러워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아프리카 국가에서 식민종주국 언어 사용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영어권 아프리카,’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등의 용어가 일반적으로 쓰이지만, 실상 아프리카 국가에서 식민종주국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계층은 고등교육을 받은 소수다. 대개 아프리카의 일반대중들은 식민종주국 언어로 기본적인 의사소통 정도 할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아프리카 토착어를 주로 쓴다. 그런데 아프리카 국가에서 식민종주국 언어는 권력의 언어다. 영어나 프랑스어를 잘해야만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사회 각 분야의 주역으로 행세할 수 있다. 이 권력의 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대다수 일반대중은 주변화될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의 진정한 탈식민화는 바로 이 언어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는 요원하다. 아프리카 토착어의 언어 지위가 격하되고, 식민종주국 언어가 권력의 언어인 현실이 지속된다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정신적 식민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이 식민주의자들이 의도적으로 주입한 열등감을 극복하고 다시금 인간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토착어 사용의 진흥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프리카 국가에서 영어나 프랑스어는 외국어이어야 하고, 국어로 지정된 아프리카 토착어가 행정, 교육, 외교, 사법의 공식어가 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다종족·다언어 사회인 아프리카에서 교통어로 자리매김한 토착어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교통어’(lingua franca)란 서로 다른 모어를 보유한 집단 간 소통을 위해 오래전부터 광범위한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어 온 언어를 가리킨다. 동부 아프리카의 스와힐리어(Swahili), 서부 아프리카의 하우사어(Hausa), 남부 아프리카의 줄루어(isiZulu) 등이 대표적인 아프리카의 교통어다. 특히, 스와힐리어는 식민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면서 대륙 전체를 통합으로 이끌 언어로 주목받고 있다. 아프리카 토착어인 스와힐리어가 식민종주국 언어 사용의 사회적 부작용을 해결할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다.
스와힐리어 사용 지역이 아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2020년부터 스와힐리어를 제2외국어 선택 과목으로 교육하고 있다. 남아공의 공교육 시스템에서 스와힐리어가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와 함께 주요 제2외국어로 지정된 것이다. 당시 기초교육부 장관(Minister of Basic Education) 엔지 모쳉가(Angie Motshekga)는 스와힐리어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영어, 아랍어 다음으로 널리 쓰이며, “아프리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힘을 지닌 언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프리카 토착어 중 유일한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의 공식어인 스와힐리어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언어이자 아프리카 사람들 간 통합을 도모하는 언어로 여겨지고 있다. UNESCO에서는 매년 7월7일을 ‘스와힐리어의 날’로 지정하여 아프리카 토착어 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스와힐리어를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교통어로 격상시키자는, 즉 모든 아프리카 사람이 스와힐리어로 소통하자는 주장은 어제오늘 나온 의견이 아니다. 아프리카인으로서는 최초로 198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나이지리아의 극작가 월레 소잉카(Wole Soyinka)와 최근 꾸준히 노벨문학상 주요 후보로 등장하고 있는 케냐의 소설가 응구기 와 시옹오(Ngugi wa Thiong’o) 등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문인들이 아프리카 통합의 매개가 되는 언어로 스와힐리어를 거론한 바 있다.
현재 아프리카 대륙 중·동부의 10여 개국에서 스와힐리어가 사용되고 있다. 독립 초기부터 스와힐리어를 장려하는 언어정책을 펼친 탄자니아는 이 언어가 가장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 국가다. 탄자니아의 국어이자 공식어인 스와힐리어는 이 국가의 국민 통합에 크게 이바지했다. 국민의 다수가 스와힐리어를 사용하고 있는 케냐에서는 독립 초기에 이 언어가 국어로 지정되었고, 2010년의 헌법 개정 시 스와힐리어에 공식어의 지위가 부여되었다. 탄자니아가 독립 이후부터 스와힐리어를 국어이자 공식어로 지정하여 공적인 영역에서도 활발하게 사용해 왔던 것과는 달리, 케냐에서는 스와힐리어 사용이 그다지 활성화되지 못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케냐와 탄자니아의 스와힐리어 사용 현황이 차이를 보이는 것은 독립 초기부터 두 나라의 국가 개발 이데올로기가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이 1960년대 초에 유럽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났고, 독립 운동을 주도한 정치 지도자들이 아프리카 신생독립국의 새로운 집권 세력으로 등장했다. 이 정치 지도자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신생독립국의 국가 개발의 노선이 결정되었다. 스와힐리어 사용 지역인 동아프리카에서 케냐는 친서방 자본주의 노선을 선택했다. 경제적으로 시장경제에 기초한 산업화를 지향하면서 서유럽·북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외교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이와 달리, 탄자니아는 비동맹주의 및 제3세계의 단결을 표방하며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했다. 특히, 1967년에 발표된 ‘아루샤선언’(Arusha Declaration)을 통해 탄자니아는 전 세계에 아프리카식 사회주의를 천명하며,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자급자족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 개발을 꾀했다. 언어 정책에 있어서도 탄자니아는 스와힐리어를 국민문화 창달의 핵심 요소로 여기고, 이 언어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이러한 스와힐리어 우선 정책의 결과로, 탄자니아에서는 아프리카 토착어인 스와힐리어가 명실상부한 국어이자 공식어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독립 초기 케냐 언어정책의 초점은 스와힐리어에 맞춰져 있지 않았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케냐는 아프리카 토착어 사용을 강조하지 않았고, 식민지 시대에 유입된 영어를 공식어로 지정했다. 케냐에서 스와힐리어 사용이 획기적으로 확대된 계기는 1985년 8-4-4 교육 체계의 실시였다. 케냐 교육부는 초등학교 8년, 중등학교 4년, 대학교 4년으로 교육 기간을 재편하면서, 전국 공통의 초등 및 중등 졸업인증 시험을 도입했다. 새로운 교육 체계에서 스와힐리어가 졸업인증 시험에 출제되는 필수 교과목이 되면서, 케냐의 모든 초등 및 중등 학생은 스와힐리어를 공부해야만 했다. 교육 과정에서 스와힐리어를 필수 시험 과목으로 지정한 조치는 이 언어의 사용 확대에 이바지했다. 이로 인해 케냐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스와힐리어의 지위는 한층 개선되었다.
우간다에서도 스와힐리어 화자가 다수 존재하고 일부 학교에서 이 언어가 교육되지만, 탄자니아나 케냐에서와 같이 스와힐리어가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사용되지는 않는다. 최근 우간다 정부는 스와힐리어 사용을 장려하는 언어정책을 강조하고 있는데, 2005년 헌법 개정 시 스와힐리어를 영어에 이어 두 번째 공식어로 지정하였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스와힐리어가 카탕가(Katanga)주를 중심으로 동부 지역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으며, 콩고어(Kongo), 루바어(Luba), 응갈라어(Ngala)와 더불어 4대 국어 중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아프리카대호수지역(African Great Lakes Region)의 르완다와 부룬디에도 스와힐리어 화자가 많이 있으며, 케냐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남수단,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의 남부 지역과 탄자니아 인근 잠비아, 말라위, 모잠비크 등의 북부 지역에서도 스와힐리어가 사용된다. 이밖에 과거 동아프리카 인도양 해상 무역의 거점이었던 코모로제도 및 마다가스카르 북서부와 아라비아반도의 오만에도 스와힐리어 화자가 존재한다.
스와힐리어는 현재 중·동부 아프리카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쓰이는 교통어지만, 19세기 초반까지 이 언어는 동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형성된 스와힐리 도시국가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언어였다. 스와힐리 도시국가는 과거 융성했던 인도양 해상무역을 통해 형성되었다. 10세기부터 13세기경, 소말리아부터 모잠비크까지 이어지는 동아프리카 해안과 도서 지역의 무역거점을 중심으로 30여 도시국가가 들어섰는데, 이 도시국가에서 기존의 반투계 아프리카인들과 아랍 및 페르시아계 이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독특한 해안 사회를 구성했다. 이처럼 해안 지역에서만 쓰이던 스와힐리어가 지난 이백여 년 사이에 동아프리카 사회에서 일어난 역사적 변화로 인해, 광범위한 내륙 지역까지 그 사용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스와힐리어 내륙 전파의 첫 번째 계기는 동아프리카 내륙 교역의 급격한 성장이다. 동아프리카 내륙 교역은 18세기 이전에도 행해졌지만, 유럽과 북미의 국가들이 잔지바르(Zanzibar)와 공식 교역 관계를 수립한 1840년대에 동아프리카의 무역 규모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증했다. 당시 상아 채취와 노예 포획을 위해 대상(隊商, caravan)이 조직되고, 이들의 내륙 원정이 이어졌다. 이 대상을 이끄는 사람들은 해안 출신의 스와힐리어 화자였는데, 이들이 내륙의 주민들과 접촉하면서 스와힐리어가 내륙으로 전파되었다. 내륙 무역이 활발하던 시기에 스와힐리어는 남쪽으로는 잠비아, 서쪽으로는 콩고민주공화국까지 전해졌다. 또한, 대상이 왕래하는 경로 상의 무역거점, 예를 들면 탄자니아 서부의 타보라(Tabora)와 우지지(Ujiji), 부룬디의 부줌부라(Bujumbura) 등지에는 내륙 교역 기지가 건설되기도 했다. 이러한 무역거점에는 서로 모어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었는데, 이들 사이에 의사소통 수단으로 스와힐리어가 사용되었다.
유럽 제국들의 동아프리카 식민통치 역시 스와힐리어가 동아프리카 내륙에 전파되는 것을 촉진시켰다. 19세기 말엽부터 독일은 탄자니아의 내륙인 탕가니카(Tanganyika)에서, 영국은 잔지바르와 케냐에서 식민지를 운영했다. 독일과 영국은 효율적인 식민행정을 위해 스와힐리어 사용을 장려했다. 특히, 독일 식민행정부는 스와힐리어를 중요한 식민통치 수단으로 인식하고, 탕가니카 전역에 스와힐리어 사용이 확대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독일 식민행정부는 군인, 교사, 경찰관, 통역관, 하급관리 등 식민통치를 위한 현지 인력을 고용할 때, 스와힐리어 화자를 선호했다. 따라서 독일 식민지 시대에 주민과 관청 사이의 의사소통은 주로 스와힐리어를 매개로 이루어졌으며, 이전까지 교역의 언어였던 스와힐리어에 행정 및 교육의 언어라는 새로운 지위가 부여되기도 했다.
동아프리카에서 신생독립국의 출현도 스와힐리어 사용 확대에 기여했다. 특히, 탄자니아의 정치 지도자들은 스와힐리어를 새로이 건설된 탄자니아의 정체성과 국민문화 확립에 필수적인 요소로 여겼다. 독립 초기부터 국립대학에 스와힐리어 관련 학과와 연구소가 설립되었고, ‘스와힐리어진흥협회’(Jumuiya ya Kustawisha Kiswahili) 같은 국책 기관이 스와힐리어 발전을 주도했다.
스와힐리어의 위상이 강조되고 사용 지역 및 화자수가 증가하는 상황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토착어 사용을 통해 아프리카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유지되는 가운데, 한 국가 국민들 간의, 나아가서는 아프리카 사람들 간의 통합을 도모하는 언어로 스와힐리어가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스와힐리어는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남수단, 르완다,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 등 동아프리카의 7개국 정부가 참여하고 있는 동아프리카공동체(East African Community)의 공식어다. 동아프리카공동체는 회원국 간 자유로운 재화, 노동, 자본의 이동을 촉진하는 협정을 2010년에 맺은 바 있으며, 궁극적으로 단일통화 사용과 정치 연합체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동아프리카 통합의 움직임 속에서 스와힐리어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언어로서 동아프리카인들 간 결속을 다지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자신들 고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강제로 주입된, 자신들 삶의 방식과 예술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 아프리카 문화를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가치 있는 자산으로 재발견할 때만이 아프리카인의 정신적 독립은 성취될 수 있다. 그 첫걸음은 아프리카 토착어 사용의 진흥이다. 아프리카 토착어에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가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현대 아프리카 국가의 각 분야에서 토착어 사용이 활성화되어야 세계만방에서 아프리카 문화의 가치가 정립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