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위클리] 30년만에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과반 무너진 남아공 총선 결과, 향후 전망은?
+ 남아공 총선 결과와 ANC 지지율 하락 원인
이번 총선은 인종 간 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가 1994년에 폐지된 뒤 치러진 일곱 번째 총선이다.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는 남아공에서 평등선거가 실시된 후 선출된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민주화의 아버지’로 평가받고 있다. 만델라를 배출한 정당인 아프리카국민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 ANC)는 1912년 시민단체로 창립되어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에는 흑인 저항운동 단체로 성장했고 1994년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이후 지금까지 30년간 단독 집권당 자리를 지켜왔다.
BBC 보도에 따르면, 현재 남아공의 실업률은 2024년 1분기 기준 32.9%으로 사상 최악의 수치를 기록했고 UN 보고서는 이를 ‘시한폭탄’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남아공 전체 부의 71%를 10%의 국민만이 누리고 있어 빈부격차도 심각하다. 경제 상황 또한 지속적으로 나빠져 지난 2023년 경제 성장률은 0.6%에 불과했다. 특히 에너지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경제가 위축되고, 다수의 소규모 사업자들이 영업을 종료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무역환경 또한 악화되어 외국 자본이 남아공 대신 동부 아프리카 국가들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촉발되어 ANC 집권에 대한 지지가 하락했다는 분석이다.
+ 주요 정당의 특성 및 공약
이번 총선에서 ANC는 역사적으로 차별받고 소외된 흑인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중점적으로 호소했으며, 값비싼 의료비와 사보험의 부담을 완화할 국가 주도의 국민건강보험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제1야당인 DA는 2000년 백인 소수통치의 정당들이 합병하여 탄생한 정당으로 이번 총선 득표율은 21.81%이다. 현재 존 스틴후이센(John Steenhuisen) 등 백인이 중심이 되어 이끌고 있으며 케이프타운(Cape Town)을 비롯한 서부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 ANC가 흑인과 소외 계층, 노동자 권리 신장을 추진하는 것과 달리, DA는 흑인경제 육성에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고 노동법을 고용주의 입장에 맞도록 개정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 중 백인이 7%에 불과한 남아공에서 백인과 기업 친화적 이미지의 DA가 지지층을 넓히는 것은 큰 도전이기도 하다.
특기할 점은 주마 전 대통령이 이끄는 신생정당 MK가 득표율 14.36%로 58개 의석수를 확보하며 제3당이 되면서 예상보다 선전한 것이다. 특히 주마 전 대통령의 고향인 콰줄루-나탈(KwaZulu-Natal) 주에서 44%를 득표하며 ANC보다 우위를 점했다. 주마 전 대통령은 남아공 흑인 민족 중 다수인 줄루(Zulu) 출신으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남아공 대통령을 지냈으나 인도 재벌인 굽타 가문과의 유착관계 및 부정부패 의혹으로 ANC 내부에서도 지지를 잃고 2018년 6월 하야했다. 그 뒤 2020년 2월 비리혐의로 주마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으나, 그는 반부패위원회 출석을 거부하였으며 2021년 6월 법정모독죄로 징역 15개월을 선고받았다. ANC와 관계가 틀어진 주마 전 대통령은 2024년 총선을 앞두고 ANC를 비난하며 MK당의 1번 후보로 추대됐으나, 범죄경력으로 인해 국회의원 출마는 금지되었다.
+ 향후 일정 및 전망
남아공의 정치제제는 내각책임제 요소가 가미된 대통령제로 국민들이 총선을 통해 국회를 구성하고, 이렇게 구성된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을 뽑는다. 이에 총선 2주 뒤인 6월 14일에 실시될 의회에서 차기 대통령이 선출될 예정이다.
ANC 사무총장은 6월 2일 선거결과가 발표난 후 라마포사(Cyril Ramaphosa) 대통령을 차기 대통령으로 계속 추대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민주주의를 위한 승리(a victory for democracy)”로 평가하며 선거결과를 인정하고 다른 정당과의 공감대 형성을 요청하며 연립정부 구성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뒤이어 6월 6일에는 ANC가 다른 당과 연합하여 국가통합정부(Government of National Unity: GNU)를 구성할 것임을 밝혔다. 또한, GNU를 구성할 때 우선 과제로 국가안보, 평화, 안정, 포용적 경제성장, 인종차별 및 성차별 철폐 등을 언급했다. 그리고 국민들의 요구가 높은 분야인 일자리 창출, 포용적 경제 성장, 물가 상승, 범죄 및 부패문제 해결 등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역시 난관이 예상된다는 전문가들의 반응이 주를 이룬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까지 ANC의 연정 상대조차도 확실하지 않다. 의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이 전혀 없는 사상 최초의 현 상황에서 ANC의 선택지는 다양하다. 첫째 안으로 ANC는 제1야당인 DA와 손을 잡을 수 있으나, 흑인우선주의를 내세운 ANC와 백인 중심적인 DA의 이념적 차이가 있으며, 특히 ANC가 제시한 국민건강보험법 등 흑인과 소외 계층 위주의 복지 정책에서 양측은 큰 의견 차이를 보인다. ANC와 정치적 동맹 관계이자 최대 노동단체인 남아공노동조합총회(Congress of South African Trade Unions: COSATU)와 남아공공산당(South African Communist Party: SACP)은 총선 이후 ANC-DA 연정설이 불거지자 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MK당은 연정의 조건으로 라마포사의 퇴임을 요구했으나 ANC가 이를 거부하여 사실상 연정구성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ANC의 사무총장인 피킬레 음발룰라(Fikile Mbalula)는 MK의 라마포사 현 대통령 퇴진 요구에 대해 “That is a no-go area(접근금지 구역).”라며 절대 수용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MK가 총선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거둔 만큼 향후 ANC와 어떤 관계를 형성할지 주목할 만하다.
6월 14일 국회 첫 회의 소집 후 차기 대통령이 선출되면 6월 19일 경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현재로서는 ANC당의 지지를 받는 라마포사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되나 연정 구성 진행에 따라 연임에 실패할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대통령 선출 이후에도 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은 더 길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