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대서양-아프리카 잇자' 모로코의 글로벌사우스 정책(임기대 / 부산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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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5-08-08
조회
12

아프리카 모로코 지도
[제작 양진규]
2019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 이후 모로코를 찾지 못했던 필자는, 6년 만인 올해 7월 오랜만에 현지를 다시 방문했다. 모로코는 그동안의 공백을 무색하게 할 만큼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자국은 물론 세계 지역 정세 변화에 맞서 모로코가 혁신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시선을 끈 모로코의 대외정책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정책이다. 2023년 11월 모하메드 6세 모로코 국왕은 대서양·아프리카 이니셔티브(AAI)를 출범하고, 글로벌 사우스와 긴밀한 협업을 선언했다.
모로코는 고대부터 사하라 횡단로를 통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와 교역은 물론 문화 교류의 역사도 쌓아왔다. 1956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모로코는 1960년 카사블랑카회의를 주도하는 등 아프리카 국가의 독립운동과 대륙 통합을 적극 지원했다. 1970년과 1980년대에는 아프리카 국가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1986년 남-남협력(South-South Cooperation) 강화를 위해 국제협력청(AMCI)을 신설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연합(AU)의 전신인 아프리카통일기구(OAU)의 창립 회원국이기도 한 모로코는 서사하라를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문제로 OAU와 대립하다 1984년 탈퇴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중요성이 점차 강화되면서 모하메드 6세 국왕은 2017년 AU에 재가입했다.

모하메드 6세 모로코 국왕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모하메드 6세는 아프리카 국가를 비롯해, 글로벌 사우스 지역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99년 즉위 후 아프리카 국가 순방을 50여회에 걸쳐 진행했다. 또 1천500개 이상의 협정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사회 인프라와 에너지, 농업, 공업, 교육, 보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사업을 추진했다. 더 나아가 모로코 정부는 남남협력 정책을 통해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연대와 협력의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는 글로벌 사우스 내 리더십과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동시에 북아프리카 지역의 역학관계, 특히 알제리와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모하메드 6세의 국제적 정치 리더십은 현재 많은 국민으로부터 절대적 신뢰를 얻고 있다. 모로코의 공공기관은 물론 개인 자영업체나 언론 등에서 그의 사진을 찾아볼 수 있다.

폴리테크닉대학교 입구의 모하메드 6세 사진
[임기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필자는 최근 모로코 정부가 글로벌 사우스 정책과 연계해 추진 중인 세 가지 핵심 사항에 주목했다.
첫째, 모로코의 '대서양·아프리카 이니셔티브'(AAI)다. AAI는 2023년 11월 서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아프리카 대형 지역 개발 프로젝트로 모하메드 6세가 공식 발표한 사업이다. 이니셔티브는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차드 등 사헬 내륙 국가에 대서양으로 향하는 해상 접근권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이니셔티브는 경제적·지정학적 고립을 해소함과 동시에, 아프리카 대서양 연안국 간 통합과 번영을 촉진하기 위해 출범했다. 2024년 1월 사헬 내륙 국가들이 서아프리카경제연합(ECOWAS)에서 탈퇴를 선언한 데 이어 이듬해 1월 공식 탈퇴한 배경에는 모로코가 이들 국가에 AAI를 통해 해양 접근성을 제공하려는 의도도 있다. 여기에는 지역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알제리와 관계에서 모로코가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도 포함됐다.
또한, 사헬 지역 국가는 물론 서아프리카 국가의 인프라 개발을 지원한다. 나이지리아와는 나이지리아-모로코 가스 파이프라인 협정(NMGP)을 통해 대형 에너지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서아프리카의 여러 국가에서 모로코를 경유해 유럽까지 천연가스를 공급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모로코와 나이지리아는 물론 ECOWAS 국가와도 협력하려는 것이다.
AAI는 이러한 지역 경제협력을 통해 안정과 번영을 주도하겠다는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물론 이니셔티브에는 알제리로부터 천연가스 공급 중단으로 생긴 공백을 메우고 아프리카 내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숨어 있다. 즉 대서양 연안을 거점으로 새로운 경제적·지정학적 중심축을 형성함으로써 모로코가 사헬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모로코의 대서양 연안을 세계 시장과 연결되는 새로운 무역, 물류의 허브로서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도 포함됐다.
둘째, AAI와 글로벌 사우스 정책의 이면에는 모로코를 중심으로 지역 패권을 재편하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모로코 입장에서는 서사하라 문제가 모든 외교 정책의 기준으로 작용하는 만큼, 알제리와의 경쟁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모로코는 알제리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사헬 국가에 손을 내미는 등 AAI를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추진해 온 남-남협력 정책을 더욱 구체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를 통해 서사하라를 자국 영토로 편입시키려는 전략적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과 프랑스, 스페인이 서사하라에 대한 모로코의 영유권을 인정하고 있다. 영국도 최근 그 대열에 참가했다. 걸프 국가들 역시 모로코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2020년 12월 이스라엘이 모로코와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서사하라 문제가 모로코에 유리하게 흘러갔다. 2025년 5월 동아프리카의 케냐도 서사하라에 대한 모로코의 영유권을 인정했다.
반면 알제리는 모로코의 서사하라 영유권 주장을 일종의 신식민주의로 비난하고, 2021년 모로코와 외교관계를 공식 단절했다. 이는 모로코의 에너지 안보는 물론 역내 경제협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알제리는 자국에서 시작해 모로코를 경유하는 가즈-마그레브-유럽(GME) 파이프라인의 운영을 중단했다. 사실상 활동이 중단된 아랍·마그레브연합(AMU)을 대신해 알제리 주도로 리비아, 튀니지 등과 별도 연합체 구성이 추진됐다.
전통적 마그레브 국가 간 교류가 과거와 같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모로코는 서방 국가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이는 미국, 유럽, 나아가 걸프 국가는 물론 글로벌 사우스 국가와 협력 다변화를 통해 지정학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모로코의 서아프리카 국가와 관계 강화는 주목해 볼 만하다. 글로벌 강대국의 아프리카 영향력 경쟁이 심화할수록 모로코는 다양한 외교적 선택지를 활용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모하메드 6세 폴리테크닉 대학교(UM6)
정문에서 바라본 UM6 [임기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셋째, 모하메드 6세 폴리테크닉 대학교(UM6)의 설립과 성장 역시 주목할만하다. 이 대학은 벵게리르와 수도 라바트에 각각 캠퍼스를 두고 있다. 아프리카와 글로벌 협력 연구에 중점을 둔 응용 연구 중심의 교육·연구 기관이다. 혁신 지향적 교육 모델을 기반으로 등록금은 연간 1만달러(약 1천400만원) 수준이지만 전체 학생의 60%가 전액 장학금을 받는다. 강의의 60%는 영어로 진행한다. 모든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도 특징이다.
모로코 정부는 서구의 유수 대학에 견줄만한 최첨단 캠퍼스를 갖춘 이 대학을 어떤 목적으로 설립했을까. 그 배경에는 아프리카와 글로벌 사우스 관계 연구를 강화하고 전면에 내세우려 하는 전략적 구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대학이 기존의 대학과 다른 점은 현장 실습과 문제해결형 중심의 연구 방식을 지향한다는 데 있다. 또 창업과 스타트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차별화된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 내부 문제를 중요시하고 현지인 중심의 아프리카 연구 및 관계를 강화하려는 포석을 담고 있다. 단순히 아프리카 내의 한 대학이 아니라 아프리카를 선도하고 글로벌 사우스 정책의 허브로서 새로운 위상을 구축하겠다는 모로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모하메드 6세 폴리테크닉대학 뉴사우스 정책 센터(UM6)
[임기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렇듯 모로코의 글로벌 사우스 정책은 AAI를 통해 구체화 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지역의 다극적 질서 상황을 주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모로코는 UM6 대학 설립과 뉴사우스 정책센터 운영을 통해 학술 연구 분야에서도 아프리카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다만 과제도 여럿 남아 있다. 사헬 지역의 불안정한 정세와 테러리즘, 재정적 제약, 세네갈·모리타니 등 일부 국가의 소극적 참여, 그리고 알제리와 경쟁 관계가 가져올 외교적 위험 요소 등이다. 향후 모로코가 이 같은 변수를 어떻게 대응할지에 따라 그 결과는 지역 정세 변화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