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왜 지금 아프리카인가…미국의 원조 공백이 우리의 기회 (김성수 / 한양대 유럽아프리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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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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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정책의 기조를 재조정하자, 아프리카 개발 협력 지형이 급격히 요동치고 있다. 1961년 설립 이후 빈곤 퇴치, 민주주의 강화, 평화유지, 인권 및 보건 보호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내걸고 활동해온 미국 국제개발처(USAID)가 대폭 축소되거나 아예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올해 1월 20일 백악관은 해외 개발원조 90일 일시중지를 명령했다. 방향은 분명하다. '미국 우선주의' 아래, 원조는 축소되고 미국 중심의 전략적 이익으로 재배치되고 있다.
숫자로 보면 그 충격이 더욱 생생하다. 지난 10년간 아프리카 대륙 공적개발원조(ODA)의 26% 이상을 담당해온 USAID는 매년 150억 달러(약 20조7천억원) 이상을 투입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보건·위생 등 인도적 지원에 집중해왔다. USAID의 대규모 원조는 아프리카 개발의 핵심 축이었으며, 미국 소프트파워 외교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연방 부채 감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USAID 축소를 단행했다. USAID가 운영 중이던 6천200개 프로그램 중 83%에 해당하는 5천200개가 공식 폐지됐다. 2026년 원조 예산은 2025년 대비 48%나 줄어든 284억 달러로 책정될 전망이다.
이는 단순한 예산 삭감이 아니다. 미국 외교 정책의 DNA가 바뀐 것이다. '보편적 가치 확산'에서 '미국 중심의 전략적 이익 추구'로 방향을 틀었다. 미국이 아프리카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역내 생산품의 수출관세를 면제했던 AGOA(아프리카 성장기회법)도 같은 맥락에서 재검토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을 더 이상 순수한 인도주의적 지원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장경제로 전환을 강하게 압박해 아프리카 국가를 글로벌 가치사슬에 포함하려는 새로운 접근법을 내세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조와 관련, "미국의 핵심 국가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고 못 박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미국의 지원 중단 여파는 즉각 나타났다. 아프리카의 보건·식량 안보 시스템·평화유지 활동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와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AIDS) 프로그램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 미국의 긴급에이즈 구호계획(PEPFAR) 자금이 완전히 중단될 경우, 향후 10년간 수십만 명의 HIV 관련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현실이 되는 것이다. 케냐에서는 USAID 지원 의약품 유통이 중단돼 HIV 환자들의 치료제 재고가 위험 수준에 도달하는 등 고통을 겪는 중이다.
식량 안보 역시 심각하다. 해외 개발원조 90일 일시중시 명령 직후 약 5억 달러(약 6천800억원)에 달하는 지원 식량이 항구와 창고에 보관된 채 부패할 위험에 놓였다. 실제로 상당수가 부패해 폐기 처리되기도 했다. 이는 전 세계 인도주의 단체들의 구호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에티오피아 티그라이주와 수단 난민촌에서 식량원조 유용 사례까지 발생했다. 원조의 한계가 원조 삭감의 빌미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외부 지원이 사라져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원조 유용과 부패 등 수혜국 내부의 통제 부재 문제와 맞물려 부작용을 낳고 있다.
미국이 남긴 '힘의 공백'은 곧바로 다른 강대국들의 경쟁 무대가 됐다. 소말리아와 콩고는 평화유지군의 활동이 약화하면서 기반이 흔들리고 있으며, 러시아와 중국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러시아는 안보협력과 자원개발에 집중하며,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결핵 및 HIV 치료제를 즉각 지원했다.
중국은 더욱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안보협력뿐 아니라 일대일로에 기반한 '공동의 미래'와 '내정 불간섭' 원칙을 내세운다. 인프라 및 설비 제공, 인적 자원 개발 등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한 '패키지 프로젝트'를 더욱 확장하고 있다.
미국의 '가치 기반' 원조 모델이 사라진 자리를 중국과 러시아의 '무조건적' 모델이 채우고 있다. 이들의 접근은 아프리카 지도층에게 매우 매력적이기도 하다. 정부의 투명성 제고라는 정치적 부담 없이 실질적인 성과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프리카 지도층의 권력 강화 도구로 사용돼, 정부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약화할 우려가 있다.
그런데 이 위기 속에서 희망의 싹이 트고 있다. 오랜 원조 의존성을 탈피하고 자생적 발전 모델을 모색하려는 아프리카의 움직임이 그것이다. 2021년 출범한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가 대표적 사례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래 가장 많은 국가가 참여하는 이 자유무역협정은 역내 관세 및 비관세 장벽 철폐를 통해 단일 시장 형성을 목표로 한다. 이 협정이 계획대로 시행될 경우 2035년까지 아프리카 전체 수출액은 30% 이상(약 9천500억달러·1천312조원) 증가하고 약 3천만명이 극빈층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USAID 지원 삭감은 아프리카에 '외생적 충격'으로 작용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원조 의존성을 벗어나 자생적 경제 구조를 구축해 '내적 동력'을 강화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고 있다. 기존 원조 방식이 일부 국가에서 '도덕적 해이'를 유발했다는 비판도 함께 극복할 시기가 됐다. 아프리카는 외부 공여국의 변덕에 흔들리지 않는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구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산업기반의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기회가 보인다. 미국의 지원 중단은 아프리카의 보건, 교육, 농업, 평화유지 등 여러 분야에 상당한 공백을 초래하고 있다. 우리는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공백을 일부분 메우면서, 동시에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혁신 기술과 개발 경험을 아프리카가 추진하는 산업구조변혁과 관련해 전수할 수 있다. 일방적 원조보다 상생 협력을 선호하는 아프리카의 요구에 부응하며 파트너십을 강화해가는 것이 핵심이다.
바로 아프리카가 지향하는 '포용적 녹색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스마트 그리드, 보건과 위생, 신재생에너지, 생태관광 등의 기술력을 전수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교육을 통해 인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기술이 아프리카 대륙에 표준으로 정착될 가능성도 커진다.
아프리카는 세계 경제의 마지막 성장 동력이자 거대한 시장이다. 또한 이들의 전략적 선택은 국제무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USAID 원조 중단으로 미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이 공백을 메워나간다면 아프리카 내에서 우리나라의 영향력과 위상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이는 곧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확대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미국의 USAID 지원 변화는 아프리카에 단기적 위기를 가져왔지만, 장기적으로는 아프리카가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는 데 중요한 촉매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위기 속에서 한국은 아프리카와 새로운 차원의 협력 관계를 구축할 기회를 맞았다. 중요한 것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남아프리카 레소토에는 '지혜는 오직 한 집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라는 속담이 있다. 변곡점을 맞고 있는 국제 정세의 흐름 속에서 유연한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미국이 떠난 빈자리를 단순히 채우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자립과 성장을 돕는 지혜로운 파트너가 돼야 한다. 그 길에서 우리나라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숫자로 보면 그 충격이 더욱 생생하다. 지난 10년간 아프리카 대륙 공적개발원조(ODA)의 26% 이상을 담당해온 USAID는 매년 150억 달러(약 20조7천억원) 이상을 투입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보건·위생 등 인도적 지원에 집중해왔다. USAID의 대규모 원조는 아프리카 개발의 핵심 축이었으며, 미국 소프트파워 외교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연방 부채 감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USAID 축소를 단행했다. USAID가 운영 중이던 6천200개 프로그램 중 83%에 해당하는 5천200개가 공식 폐지됐다. 2026년 원조 예산은 2025년 대비 48%나 줄어든 284억 달러로 책정될 전망이다.
이는 단순한 예산 삭감이 아니다. 미국 외교 정책의 DNA가 바뀐 것이다. '보편적 가치 확산'에서 '미국 중심의 전략적 이익 추구'로 방향을 틀었다. 미국이 아프리카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역내 생산품의 수출관세를 면제했던 AGOA(아프리카 성장기회법)도 같은 맥락에서 재검토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을 더 이상 순수한 인도주의적 지원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장경제로 전환을 강하게 압박해 아프리카 국가를 글로벌 가치사슬에 포함하려는 새로운 접근법을 내세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조와 관련, "미국의 핵심 국가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고 못 박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미국의 지원 중단 여파는 즉각 나타났다. 아프리카의 보건·식량 안보 시스템·평화유지 활동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와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AIDS) 프로그램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 미국의 긴급에이즈 구호계획(PEPFAR) 자금이 완전히 중단될 경우, 향후 10년간 수십만 명의 HIV 관련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현실이 되는 것이다. 케냐에서는 USAID 지원 의약품 유통이 중단돼 HIV 환자들의 치료제 재고가 위험 수준에 도달하는 등 고통을 겪는 중이다.
식량 안보 역시 심각하다. 해외 개발원조 90일 일시중시 명령 직후 약 5억 달러(약 6천800억원)에 달하는 지원 식량이 항구와 창고에 보관된 채 부패할 위험에 놓였다. 실제로 상당수가 부패해 폐기 처리되기도 했다. 이는 전 세계 인도주의 단체들의 구호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에티오피아 티그라이주와 수단 난민촌에서 식량원조 유용 사례까지 발생했다. 원조의 한계가 원조 삭감의 빌미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외부 지원이 사라져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원조 유용과 부패 등 수혜국 내부의 통제 부재 문제와 맞물려 부작용을 낳고 있다.
미국이 남긴 '힘의 공백'은 곧바로 다른 강대국들의 경쟁 무대가 됐다. 소말리아와 콩고는 평화유지군의 활동이 약화하면서 기반이 흔들리고 있으며, 러시아와 중국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러시아는 안보협력과 자원개발에 집중하며,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결핵 및 HIV 치료제를 즉각 지원했다.
중국은 더욱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안보협력뿐 아니라 일대일로에 기반한 '공동의 미래'와 '내정 불간섭' 원칙을 내세운다. 인프라 및 설비 제공, 인적 자원 개발 등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한 '패키지 프로젝트'를 더욱 확장하고 있다.
미국의 '가치 기반' 원조 모델이 사라진 자리를 중국과 러시아의 '무조건적' 모델이 채우고 있다. 이들의 접근은 아프리카 지도층에게 매우 매력적이기도 하다. 정부의 투명성 제고라는 정치적 부담 없이 실질적인 성과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프리카 지도층의 권력 강화 도구로 사용돼, 정부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약화할 우려가 있다.
그런데 이 위기 속에서 희망의 싹이 트고 있다. 오랜 원조 의존성을 탈피하고 자생적 발전 모델을 모색하려는 아프리카의 움직임이 그것이다. 2021년 출범한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가 대표적 사례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래 가장 많은 국가가 참여하는 이 자유무역협정은 역내 관세 및 비관세 장벽 철폐를 통해 단일 시장 형성을 목표로 한다. 이 협정이 계획대로 시행될 경우 2035년까지 아프리카 전체 수출액은 30% 이상(약 9천500억달러·1천312조원) 증가하고 약 3천만명이 극빈층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USAID 지원 삭감은 아프리카에 '외생적 충격'으로 작용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원조 의존성을 벗어나 자생적 경제 구조를 구축해 '내적 동력'을 강화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고 있다. 기존 원조 방식이 일부 국가에서 '도덕적 해이'를 유발했다는 비판도 함께 극복할 시기가 됐다. 아프리카는 외부 공여국의 변덕에 흔들리지 않는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구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산업기반의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기회가 보인다. 미국의 지원 중단은 아프리카의 보건, 교육, 농업, 평화유지 등 여러 분야에 상당한 공백을 초래하고 있다. 우리는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공백을 일부분 메우면서, 동시에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혁신 기술과 개발 경험을 아프리카가 추진하는 산업구조변혁과 관련해 전수할 수 있다. 일방적 원조보다 상생 협력을 선호하는 아프리카의 요구에 부응하며 파트너십을 강화해가는 것이 핵심이다.
바로 아프리카가 지향하는 '포용적 녹색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스마트 그리드, 보건과 위생, 신재생에너지, 생태관광 등의 기술력을 전수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교육을 통해 인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기술이 아프리카 대륙에 표준으로 정착될 가능성도 커진다.
아프리카는 세계 경제의 마지막 성장 동력이자 거대한 시장이다. 또한 이들의 전략적 선택은 국제무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USAID 원조 중단으로 미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이 공백을 메워나간다면 아프리카 내에서 우리나라의 영향력과 위상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이는 곧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확대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미국의 USAID 지원 변화는 아프리카에 단기적 위기를 가져왔지만, 장기적으로는 아프리카가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는 데 중요한 촉매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위기 속에서 한국은 아프리카와 새로운 차원의 협력 관계를 구축할 기회를 맞았다. 중요한 것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남아프리카 레소토에는 '지혜는 오직 한 집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라는 속담이 있다. 변곡점을 맞고 있는 국제 정세의 흐름 속에서 유연한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미국이 떠난 빈자리를 단순히 채우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자립과 성장을 돕는 지혜로운 파트너가 돼야 한다. 그 길에서 우리나라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