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튀니지의 아프리카 이주민 급감과 권위주의 정부(임기대 / 부산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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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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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이탈리아로 유입되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들로 골치를 앓던 튀니지와 이탈리아가 아프리카 이주·난민 수의 급감을 반기고 있다. 2025년 상반기 튀니지 해안에서 이탈리아로 유입된 이주·난민은 약 2천명이다. 이는 2024년 같은 기간의 1만명에 비해 5분의 1로 준 수치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먼저 튀니지에서 이탈리아로 향하던 아프리카 이주·난민이 경로를 바꿔 리비아로 이동한 점을 주목할 수 있다. 튀니지 정부의 정착 억제 정책이 아프리카 이주·난민을 리비아로 향하게 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극단적인 사회적 차별이 원인이다. 튀니지는 지난 5년간 아프리카 흑인(이주·난민 포함)에 대한 차별 정책과 배타적 사회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 두 가지 요인을 통해 튀니지 내 아프리카 이주·난민의 감소 이유와 아프리카인의 차별 상황을 좀 더 주목해 보고자 한다.


2024년 재선 당시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을 지지하는 군중

[임기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첫째, 튀니지 내 아프리카인 추방으로 아프리카 이주·난민 이동 경로가 리비아 쪽으로 되돌아갔다. 당초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유럽으로 향하던 아프리카 이주·난민은 주로 리비아 해안을 이용했다. 하지만 리비아 내의 과도한 인권 침해는 상황을 뒤집었다. 2021년 7월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유럽 입국을 시도하다 리비아로 송환된 난민에 대한 리비아 정부의 인권 유린을 비판했다. 리비아로 강제 송환된 이주·난민은 수용소에서 성적 폭력, 신체적 학대, 구금, 강제노동 등 심각한 인권 침해를 겪었다. 이들은 탈출을 위해 거액의 돈을 내야 했다. 일부는 리비아 내의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그 결과 이주·난민들은 리비아를 피해 튀니지나 모로코로 경로를 바꿨다. 2023년 이탈리아에 도착한 이주·난민 약 15만명 중 절반 이상이 튀니지 해안을 통해 온 사실은 이를 보여준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이 튀니지로 몰린 결과였다.

그러나 2023년부터 튀니지 내 상황이 변했다. 2024년 1월 로마에서 열린 이탈리아·아프리카 정상회의 개막 연설에서 이탈리아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가교역할을 강조한 '마테이' 계획을 발표했다.


이탈리아·아프리카 정상회의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이탈리아는 아프리카 이주·난민 억제를 위해 튀니지와 협력이 필수적이라 보고 55억유로(약 9조원)를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2023년에는 이탈리아 총리가 튀니지를 세 번이나 방문했다. 경제난에 시달리는 튀니지에 1억500만 유로(약 1천700억원)를 지원하면서 이탈리아로 들어오는 이주·난민 억제 정책 동참을 요청했다. 튀니지 정부는 이 자금을 활용해 국경 관리와 단속을 강화했다. 이를 통해 자국을 거쳐 유럽으로 가는 이주 억제 정책을 펼쳤다. 이런 정책적 결과로 튀니지 내 이주·난민은 최근 1∼2년 사이 급감한 것이다.


주튀니지 프랑스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으려고 줄을 선 튀니지인들

[임기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둘째, 튀니지 내 아프리카 이주·난민의 감소는 아프리카 흑인에 대한 차별 분위기가 팽배해진 데 있다. 아랍 민주화를 주도하고 여권 신장에 가장 앞서 있던 이슬람 국가 튀니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2015년 튀니지의 '튀니지 국민 4자 대회 기구'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을 때 전 세계는 튀니지의 민주주의 과정을 주목했다. 하지만 과도정부가 출현한 이후 정국은 안정되지 못했다. 곳곳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경제 악화도 이어졌다. 이슬람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었고 각종 부패에 실망한 국민은 2019년 조기 대선에서 정치적 배경이 탄탄하지 않은 무소속의 카이스 사이에드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그의 정치 여정은 2021년 스스로 행정권을 맡겠다면서 총리 히켐 메치치를 해임하고 의회를 정지시키는 것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국회의원 면책 특권 해체를 선언하고 검찰청을 장악했다. 여기에 더해 국민들의 지지를 받던 이슬람주의 정당 엔나흐당은 청년들의 외면을 받으며 세력이 약화했다. 국가 시스템은 붕괴 위기에 놓였다.

'아랍의 봄' 이후 민주주의가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퇴행하는 가운데 사이에드 대통령은 국민의 심리를 파고들었다. 국민들이 열광하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는 정당 지원 없이 정적 제거, 대국민 직접 연설, 헌법 개정 등을 추진하며 권위주의적 색채를 점차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중의 신뢰와 권위주의 색채 강화 움직임은 아프리카 이주·난민에 대한 강압 정책에서도 나왔다. 국민들의 불만을 희석하는 그의 아프리카인에 대한 발언과 정책은 우려 수준을 넘기 시작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던 2023년 2월 담화에서 그는 튀니지의 아랍·이슬람 정체성과 국가주의를 부추기는 연설을 했다. 마치 유럽의 극우주의에서나 나올법한 내용을 발표한 것인데, 이 와중에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2023년 6월 튀니지를 공식 방문했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개발이민회의

튀니지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왼쪽)과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총리[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그녀의 방문은 양국 협력이라는 것 이외 이주·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었다. 튀니지 입장에서는 정치사회, 경제 불안으로 EU의 도움이 간절했기에 양국 정상은 쉽게 대화를 풀어갈 수 있었다.

리비아에서 튀니지로 이주·난민이 몰리면서 많은 아프리카인이 유럽으로 가는 관문으로 튀니지를 선택했다. 2024년 대선을 앞두고 사이에드 대통령은 인종주의와 외국인 혐오 발언 수위를 높였다. 이는 조르자 멜로니의 정책과 비슷한 행보였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스 정상들이 연이어 튀니지를 방문했고, 사이에드 대통령은 이주·난민 척결을 대가로 유럽 국가들로부터 경제 지원을 확보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이에드 대통령은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아프리카인까지 억압하기 시작했다. 그는 외국인 혐오증, 음모론, 인종 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음모론의 내용은 이주·난민이 자국의 인구 구성을 바꾼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이주·난민이 튀니지를 아랍·이슬람국가와 무관한 순수한 아프리카 국가로 만들려 한다고 비난했다. 일부 극우주의자는 그의 정책에 열광했다.

튀니지 동부 지중해 항구도시 스팍스

[구글지도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런 상황에서 튀니지 내 아프리카인들이 유럽행을 선택했다. 단순히 유럽을 향하는 욕망이 아니라 튀니지 내 차별과 학대, 착취 등을 피해 이탈리아나 프랑스로 향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아프리카인에 대한 혐오가 조장되는 형국이었다.


튀니지 제2의 항구 스팍스의 새벽

[임기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튀니지 제2의 항구 도시 스팍스(Sfax)에서 벌어진 아프리카인 추방 운동은 튀니지민족주의당(TNP)과 같은 극우 단체의 소행이었다. 이 단체는 튀니지 민족주의를 조장했고, 정부는 사실상 이를 묵인했다. 그 결과 사회 전반으로 혐오가 확산했다. 이에 따라 일반 시민이 아프리카 흑인을 살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2025년 3월 스팍스에서 최소 18명의 흑인이 숨졌으며, 4월에는 기니 출신 이주민(32)과 말리 출신 이주민(38)이 민간인에게 살해됐다.


스팍스 한 카페에서 일하는 부르키나파소 출신 난민과 필자(오른쪽)

[임기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런 상황에서 아프리카 흑인들이 과연 튀니지에 머물고 싶을까. 2025년에 들어 그들이 왜 튀니지를 떠나 리비아로 이동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